아름다운 기억-1
<꿈꾸던 A기업의 입사>
세 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
첫 직장이었던 A회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의 경력에도 '친정'이라는 곳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곳이 또한 A회사이다.
친정이라는 곳이 부모가 있고
나의 어린 시절 추억과 흔적이 있어
늘 그리운 곳이 아닐까 한다.
A회사는 나에게 친정과도 같은 곳으로
내 마음 가장 자리에 드높게 솟은
큰 나무와도 같다.
사회생활과 업무에 관해서는
나의 근원과 같은 곳으로
항상 존중하고 그 모든 사람들과 했던
추억에 감사한다.
수 많은 Project를 수행하면서
수 없이 많은 일과
사람들을 경험하고 만났다.
한 분 한 분 얼굴이 떠오를 만큼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기회가 된다면
그 즐거운 기억으로 잠시 돌아가
그 때가졌던 순수했던 열정과
행복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
대학교 재학 당시,
A회사에 다니는 형으로부터
이 회사를 알게 된 이후
나는 그때부터 이 회사의 입사를
꿈꿔왔었다.
오랜 노력을 통해 가장 원했던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고,
또한 가장 희망했던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었을 때의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실세와 세력>
내가 맡은 업무는 기대 이상으로
즐겁고 재미있었다.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일의 재미에 푹 빠졌고
업무 종료 이후 여러 부서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또 하나의 유쾌한 장이었다.
내가 속한 팀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나의 사수는 A세력장이었고
실제 부서의 에이스들은 대체로
B세력에 속해 있었다.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
자세한 얘기는 당사자들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동기였던 A와 B는 어떤 일로 다투었고
그게 세력(라인)으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던 것으로 이해한다.
어쨌건 둘 사이에서 나의 선택은 B세력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그 선택에 전혀 후회는 없다.
여기서 세력이라고 하니 장황하게
들리겠지만 크게 뭐 없다.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세력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 사용한 것이니
그러려니 생각해 주길 바란다.
B세력은 특이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세 명의 모습은
영화 아마겟돈에서 주인공들이
우주선에서 내려 활주로를
걸어오는 장면과 비슷했다.
주위의 평판은 물론 실력 또한
부서 밖으로까지 정평이 나있을 만큼
우월한 조합이었다.
특수한 프로젝트만 전담하는 그들은
우리 부서의 자랑이었다.
의욕이 충만했던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날을 바랬고
그들과 견줄만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입사 후 1년의 시간이 지나
나에게 기회가 왔다.
신규 대형 프로젝트 담당자 중
한 명으로 낙점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위 에이스 세 명 중
두 명이 참여하였고 남은 두 자리 중에서
한 자리에 내가 뽑히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힘들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 두 분들 곁에서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것에 매우 기뻤다.
대형 프로젝트답게 업무는 넘쳐났다.
총 4명의 담당자가 투입되었지만
선행 조직의 업무 지연으로
우리 부서가 필요로 하는
절대 기간마저 줄어들게 되었다.
수 많은 장표와 리포트들이 나왔다.
우리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지연 사유에 해당되는 백데이터는
반드시 작성이 필요했다.
주말이 없었다.
어느 달에는 특정 일요일 오후만 쉬고
그 달 30일 매일 출근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척 일에 심취해 있었고
너무 일이 재미있고 사람들과
지내는 그 공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에이스는 역시 에이스였다.
그 두 분들은 모두를 휘어잡는 실력과
더불어 업무에서 내 쏟는 에너지가
그 모든 것을 사로잡았다.
나의 가까운 미래에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잠시 했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상상으로 머물러 있다.
<울고 웃었던 2013~2014년>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일들이
일어난 해로 이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에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 부서에만 20명 이상이 참여했다.
참고로 한 프로젝트에 3명의 담당자가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명을 초과하는 인원이 주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생각해보라.
프로젝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이슈가 되었고 기사거리가 되었다.
우리 부서를 이끌었던 리더는
책임은 모두 뒤를 받혀주는 상사들이 지겠으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라고 하셨다.
자연스럽게 20명의 담당자들은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하였으며
모든 일들이 유기적으로 협조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선행 조직의 업무는 여전히 진척이 없었으며
프로젝트 주문주와의 마찰도
종종 발생하였다.
특히나 내가 마음을 다해 따랐었던
한 분의 인사 발령은
우리 팀 전원에게 어마어마한 맨붕을
가져다 주었다.
실질적으로 우리 팀의 맏형으로써
굳은 일을 도맡아 왔고
모든 업무에 대해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런 사람이 갑작스럽게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업무에 정치가 개입된 것이다.
발표가 나고 가진 우리 팀끼리의
회식에서 남자들 7명이
눈물을 흘렸다.
우린 진심으로 그 사람을 따랐고
그 사람은 진심으로 마지막까지
우리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했다.
무척 아쉬웠고 이 결정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으며 누가 내린 결정인지 정말 의아하다.
우리 모두는 월급쟁이였다.
그 사람이 부서를 이동해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똑같은 생활을 말없이 이어가야 하는
월급쟁이였다.
일반 관리자인 우리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회사가 만들어 주는 환경에서
웃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위에서는 좋아할 뿐이다.
이상하다고 소리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지는
곳이 여기였다고 생각된다.
.
나의 개인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와 겹친다.
나는 타 국적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였는데 그들과의 사이가 좀처럼
낳아지지 않아 마음 고생이 많았다.
약 6~8개월 동안 이 엔지니어들과
지낸 덕분에 강제 다이어트가 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위암으로
수술을 하였는데
진심으로 힘든 시기였다.
돌아가는 장비로 인한
소음으로 나의 울음소리는 묻혔지만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서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오빠 걱정하실 까봐
위암 걸린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오빠 새로 하는 일 바쁜데
방해되고 싶지 않다고
수술 잘 되고 나면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말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완전히 무너졌다....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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